제주도 여행기(2019년10월)

2019. 10. 29. 05:15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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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번 주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제주도에 다녀왔다. 정확하게는 하루가 지났으므로 오늘이 아니라 어제로 하는 게 맞겠다. 바로 결혼식이 두 군데나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식이 두 군 데인 건 행운이라고 생각하면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라 가는 길이 그리 가볍지는 않았다. 

 

하늘은 맑았지만 가끔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렸다. 비행기 공포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몸에 힘이 들어간다.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어쩌면 내려놨다 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체념 한 체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항상 비행기에 오른다. 하지만 이젠 내 것을 정리한다거나 노트북에 있는 영상을 지운다거나 하는 노이로제성 행동들은 하지 않는다.

 

중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여학생들과 같이 비행기에 올랐다. 사투리를 쓰는 걸 보니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같았다. 오랜만에 들었던 사투리는 귀엽게 들렸다. 내가 사투리를 귀엽게 듣는 걸 보니 이제 제주도와의 앙숙이 조금은 풀린듯하다. 

멀리 한라산이 보여서 한컷 찍었다. 카메라 소리가 나서 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투어리스트 모드로 그냥 눌러댔다. 국제선은 복도 좌석 국내선은 창가로 앉는 편이다. 화장실을 자주 가는 편이라 비행이 길어지면 복도를, 내릴 때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고 여유롭게 내리고 싶어서 국내선은 창가를 택한다. 사진을 찍는 목적은 없었지만 눈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몇 방 찍었다. 

 

그 후 비행기가 심하게 몇 분을 흔들려 음료 서비스가 중단이 되었다. 어제 뉴스에는 제주에어의 한 비행기가 문제가 생겨 회항을 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거의 비상착륙 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기래기들이 쓴 기사라 거의 반만 믿었다. 아무튼 비행기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생과 죽음의 사이에서 많은 생각을 했겠다. 

 

도착하니 협재해수욕장 옆 금릉해수욕장이라고 좋은 해수욕장이 있단다. 거기로 오란다. 나는 내가 어떻게 금릉해수욕장까지 도착했는지 쓰고 싶지 않다. 나라는 인간에게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고쳐지지 않는 것 중에 하나는 버스를 제대로 타기 혹은 지하철을 제대로 타기이다. 나는 앞으로 그런 쓸데없는 노력은 안 하기로 했다. 

 

세 시간에 걸쳐서 도착하니 이미 음식은 바닥이 났다. 술은 편의점에서 사 온 다지만 그 시간에서 고기를 사올수는 없으니까... 그나마 나를 위해 남겨둔 돼지고기 한 덩어리는 서로 나를 위해 구워준다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엔 땅에 떨어뜨렸다. 그걸 다시 씻고 왔지만 맛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분위기에 사람에 맛있다고 먹는다. 그 다음은 연어다. 연어의 껍데기가 맛있었다. 바람이 불었지만 별로 방해는 되지 않았다. 누굴 사랑한다는 것을 언제 알 수 있나? 바로 신나는 일을 할 때 ,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그 사람을 생각하고 같이 있고 싶다면... 다음은 꼭 아내와 같이 온다. 

 

토요일

 

결혼식이 10시다. 이른 시간이다. 그것도 서귀포다. 내가 10시 결혼식을 참석할 거라고 얘기했을 때 어느 하나 나의 말을 믿었던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난 일어났고 어제 편의점 앞에 세워졌던 쏘카를 빌려서 사우나까지 다녀오고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 과정은 구토 다섯 번을 동반했지만... 

 

언젠가 고통은 없어지겠지 하며 차의 액셀을 밟았다. 창문도 열어보고 에어컨도 켜보고 음악도 틀어보고 이랬다 저랬다 하며 숙취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쳤다. 결국 그 숙취는 중문 맥도널드가 해결해 줬다. 제주도는 유난히 드라이브 쓰루가 많다. LA에서 살았을 때의 생각이 났다. 나쁘지 않았다. 

 

그 다음 금릉 주차장에 쏘카를 반납하고 친구들을 만났다. 쏘카가 얼마나 좋은 시스템인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다 알 것이다. 이재웅 쏘카 대표가 왜 실검에 떴는지 모르겠다만 이런 렌터카 회사는 제발 하나는 있어라.

 

 

애월 결혼식에 갔다. 생각보다는 분위기가 좋았고 생각보다는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 별 탈없이 성공적으로 마쳤다. 페북 영상들을 보다 보면 가끔 웨딩케이크가 떨어지거나 바람에 날려가는 해프닝이 있어서 모두가 웃게 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주례가 없는 결혼식이 유행이다. 주례가 없으면 주례만큼의 축사나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 잘 생각해야 한다. 과연 어떤 게 좋을지는... 

 

호텔 음식이 아주 괜찮았다. 다만 예상 하객들보다 많았지만 직원들이 다 패닉 상태다. 연어도 결국엔 냉동상태로 그냥 나온다. 먹어보고 싶었던 소불고기는 국물밖에 없다. 물론 국물에 밥 비벼 먹으면 미소가 저절로 나오지만 너무 품위가 없을 것 같고 괜히 뾰투룽해본다. 친구 딸이 계속 불고기를 먹었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그녀를 1.5초 정도 원망을 했다. 

 

친구와 친구 가족 그리고 나는 서귀포로 향했다. 다들 중국집으로 피로연(?)을 갔다는데 간다면 나오기가 힘들 것 같고 그리고 또 과음을 하여 다시 토를 열 번 할 수도 있다. 물론 서귀포로 가서 친구와의 술자리 이후의 열 번의 토가 더 나으므로 서귀포행을 택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두리번거리지 않고 그럴 힘도 없다. 엄청난 발전이다. 

 

친구 집에 짐을 풀고 가까운 양고기 집을 갔다. 양고기 꼬치를 별로 안 좋아하는지라 아주 내키지는 않았지만 친구의 설득에 넘어갔다.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와사비를 살짝 얹고 입으로 넣으면 고기가 살살 녹는 것 같다. 그즈음에 연태고량주를 들이켜면 입안에 풍기는 향이 기가 막힌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그 보다 더 기가 막힌 브렉퍼스트를 대접받았다. 정말이지 친구의 아내는 그녀가  가진 엄청나게 밝은 에너지를 가끔 닮고 싶을 때가 있게 만드는 그런 유쾌한 존재다. 

 

나는 이미 잡아놓은 약속을 위해 제주시행 버스에 올라탔다.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516 꼬부랑길이 이제는 그 다지 위험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그건 순전히 길을 넓히고 잘 닦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한면의 소중한 친구를 근 3년 만에 만났다. 소중한 친구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삶을 살아가면서 동시대 느끼는 것들을 공유하고 토론하고 위로까지 받을 수 있는 기쁨을 전혀 느껴보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한 아버지가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 안타까움을 형들에게서는 느끼고 싶지 않다. 

 

그렇게 해서 이번 제주도 여행의 여정을 마무리지었다. 그 어떤 여행보다도 절제 되고 드라이한 여행이었지만 처음으로 제주도 여행도 좋을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그걸 아버지가 없어서 라는 이유라고는 입밖에도 꺼내고 싶지 않다. 그 아름다운 수평선 , 야자수 나무가 주는 이국적인 느낌, 그 이국적인 느낌의 자유.... 그런 게 나에게는 한낱 싸구려 자기 계발서처럼 느껴진다. 누구나 그런 곳은 존재하고 또 누구나 그렇지 않은 곳도 존재한다. 그래서 사람은 환경을 이기지 못한다. 

 

월요일

 

도착하고 집 주위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처음 먹어보는 곳이다. 일 인분으로 시킬 수 있는 메뉴가 거의 없다. 고추장 불고기를 시켰다. 너무 맛있어서 밥을 하나 더 시켰다. 공깃밥을 열었다. 밥에 고춧가루가 있었다. 이모가 당황해하면서 바꿔졌다. 나는 밥을 맛있게 비벼서 먹었다. 그러고는 다시는 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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